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쿄 대첩(축구)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 [navertv(2117429)] || [youtube(tc6Gm-j1GTw)] || || [youtube(apWJHJR8WfU)] || [youtube(vKTWnqollCc)] ||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VYIjMLfvf8Y)] }}} || || {{{#000000 경기 풀영상 }}} || > '''[[후지산]]이 무너지고 있습니다!''' >---- >당시 [[MBC]]에서 중계를 맡았던 [[송재익]] 캐스터 ||<-3> '''{{{#ffffff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{{{#fff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}}}]]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B조 3차전}}}''' || ||<-3> '''{{{#1e489c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(일본, 도쿄도 신주쿠구)}}}''' || ||<-3> '''{{{#000 주심: 사드 마네 (쿠웨이트)}}}''' || || [[파일:대한민국 국기.svg|height=100px]] ||<|2> '''{{{+5 2 : 1}}}''' || [[파일:일본 국기.svg|height=100px]] || || '''[[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|{{{#ffffff 대한민국}}}]]''' || '''[[일본 축구 국가대표팀|{{{#ffffff 일본}}}]]''' || || '''83′ [[서정원]]'''[br]'''86′ [[이민성]]''' || '''득점''' || '''67' 야마구치 모토히로''' || ||<-3> '''{{{#white 중계 방송}}}''' || || [[문화방송|[[파일:MBC 로고(1986-2005).svg|height=16]]]] || [[송재익]] || [[신문선]] || 1997년 9월 28일, [[일본]] [[도쿄도|도쿄]] [[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]]에서 벌어진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1998 프랑스 월드컵]] 아시아 지역예선 [[한일전/축구|한일전]]에서 대한민국이 종료 8분을 남겨놓고 2골을 몰아넣어 역전승을 거둔 명승부이다. [[2002 FIFA 월드컵 한국·일본|2002 한일 월드컵]] 경기들을 제외하면 이 경기를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는 이들이 많다. 당시 이 한일전에 대한 국민 감정은 오히려 현 시점보다 더 뜨거웠으며, [[독도]] 분쟁을 비롯한 이런저런 외교 문제가 터지면서 [[김영삼]] 대통령이 1995년 한중정상회담에서 '''[[역사바로세우기|"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."]]'''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할 정도로 한일 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. 그래서 1996년에 200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놓고 한일 양국이 벌인 신경전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으며, 표결의 불리함을 깨달은 일본이 결국 공동 개최안을 수락하면서 공식적으로 [[FIFA]]에서 2002 FIFA 월드컵 공동 개최를 결정했다. 이것으로 과열 양상을 보이던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지 경쟁은 일단락되었으나, '''일본은 그때까지 한 번도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이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.''' 특히 [[1994 FIFA 월드컵 미국|1994 미국 월드컵]]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경기 종료 30초 전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해 다 잡았던 본선 진출 티켓을, 그것도 한국에게 넘겨준 [[도하의 기적|도하의 비극]]을 뼈아프게 체험한 일본은 가히 절치부심이라고 할 만큼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치밀하게 준비했고[* 심지어 어부지리격으로 월드컵에 나간 한국이 스페인과 2:2 무승부를 기록하고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밀어붙인 끝에 2:3으로 아깝게 패하는 선전을 벌이면서 한국이 운 좋게 월드컵에 나갔다는 정신승리조차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.] 그 일환으로 J리그 [[쇼난 벨마레|벨마레 히라쓰카]]의 선수였던 브라질 출신 [[로페스 바그너]]를 귀화시켜 대표팀에 발탁하는 초강수를 뒀다. 그렇게 지역예선 일정이 흘러가며 최종예선 조 추첨이 다가왔는데, '''B조에 한국과 일본이 함께 편성되며 두 국가는 월드컵을 향한 마지막 길목에서 만나는 운명의 장난을 맞게 된다.''' 게다가 단판 승부를 거친 뒤 풀리그 순위로 본선 티켓을 결정했던 4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서로의 안방을 오가며 결전을 치르는, 즉 [[홈 앤드 어웨이]]로 두 번의 진검승부를 벌여야만 하는 상황. 당시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, 불과 몇 달 전 [[이란 쇼크|아시안컵 8강에서 이란에게 2:6으로 대패한 것]]에 대한 책임을 물어 [[박종환]] 감독이 물러나고 선수들의 태업 의혹까지 제기되며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 것이다. 그로부터 불과 21일 만인 1997년 1월 6일 [[차범근]]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출범한 [[차범근호]]는 1차예선을 무리없이 통과했지만 대표팀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했다. 다만 최종예선 직전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|브라질]]과의 평가전에서 1:2로 선전하는 등[* 그것도 한국이 선제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제법 경기력이 좋았다. 비록 역전패를 했지만 그 당시의 브라질은 디펜딩 챔피언이자 [[1998 FIFA 월드컵 프랑스|차기 월드컵]]의 유력 우승후보였기도 하고.] 최종예선 통과 가능성은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. 실제로 한국은 잠실에서 열린 최종예선 1, 2차전을 모두 이겼는데, 당시 아시아 최강의 공격수로 발돋움하던 [[최용수]]의 활약으로 카자흐스탄에게 3:0, 우즈베키스탄에게 2:1로 승리를 거두었다. 일본의 경우 홈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6:3의 대승을 거뒀으나 아랍에미리트 원정에서 비겨서 1승 1무로 승점 4점을 기록하고 있었다.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예상대로의 전적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양 팀이 맞붙는 3차전에서 어떤 승부가 나올지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였으며, 서로가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분위기는 한창 달아올랐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